철학 교실

권권복응

포덕광제 2016. 9. 18. 09:54

우리는 지금 무엇을 위해서, 또한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는가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삼라만상의 타고난 본성인 ()’에 대한 자각없이 그저 겉껍떼기에 불과한 물질과 육체, 외모에 집착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정으로 소중한 우리 내면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가꾸어 가는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한 근원적 성찰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공자는 자신의 수제자인 안회를 거론하며 회의 사람됨은 중용을 골라서 실천하는 것이니 하나의 착한 것이라도 얻으면 받들어 가슴에 꼭 붙잡고 잃어버리지 아니한다.”하였는데 가슴에 꼭 붙잡고라는 말이 바로 拳拳(받들어 가지는 모양), 腹膺(가슴에 붙이다)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과연 안회처럼 자그마한 선일지라도 가슴에 붙여 굳게 지킬 신념과 용기를 가지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괜히 자신이 없어지면서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운전을 하다가 교차로를 황색등이 점멸할 때 지나친 경험을 한 두 번씩을 하였을 것인데 우리는 남들도 다 그러는데 뭐, 나 하나 쯤이야라는 비겁한 타협을 당연시하는데 익숙하지 않은가?

선출직 공직에 나온 사람들의 대부분이 자식을 위한 부모님의 마음이라는 얼토당토한 이유로 위장전입을 다반사로 하고 부동산 투기는 아예 필수사항이고 남자 대상자들의 대부분이 신의 아들들만이 혜택을 받는다는 군면제자들인 현실에서 일반 국민들의 정신적 박탈감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무리 지금의 현실이 자유경쟁에 기반한 자본주의 사회체제라 하더라도 우리가 지니고 있는 ()’에 자각과 이것을 지켜려는 끊임없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남들에게 피해를 주던 그들이 아파하던 사회적 룰을 파괴하고 무시하면서 자신의 이익만을 쫓는 현상이 우리 사회 전체에 만연될까 우려가 된다. 우리는 흔히 ()’이라고 한다면 커더란 그림부터 머릿속에 그리곤 한다. 마치 종이컵을 갖고서 대양(大洋)의 물을 뜬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든다.

우리가 생활 속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티끌모아 태산이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가장이라면 자신의 건강과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 금연을 실행할 수도 있는 것이다. 주부라면 근검절약을 위해 외식을 자제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자녀라면 부모님을 위해서 학업에 열중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이 우리의 본연지성임을 알면서도 자꾸 우리의 욕망을 조장하는 기질지성에 경도되는 경향에 너무 무기력하게 대응하지는 말자.

최근에 음주운전을 한 정황이 명확함에도 계속 하지 않았다고 하는 한 연예인의 예나 전관예우를 받고 불법적인 고액의 수임료를 챙긴 전 고검장 출신 인사, 해양산업에 대한 관련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사외이사직에 선임되었다가 사퇴한 인사 등 우리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에게 본연지성이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 그것을 권권복응(拳拳腹膺)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지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다.

이세돌과 인공지능인 알파고의 세기의 바둑 대결로 촉발된 4차산업혁명이란 개념이 방송에 계속해서 회자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지녀야 가치와 규범을 포함하여 인공지능에 대한 권리 보장과 이들과의 공존공생을 모색해야만 하는 미래사회가 다가오고 있다.

인간으로서의 본성을 우리는 반드시 지켜야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권권복응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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