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교실

誠於中 形於外

포덕광제 2016. 9. 18. 09:45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의 얼굴을 만난다. 그중에는 아름다운 얼굴도 있고 그렇지 않은 얼굴도 있다. 물론 이것은 우리의 주관적 판단에 의한 구분일 뿐이다.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을 뿐더러 자칫 평가대상에게 상처와 아픔을 줄 수 있는 자의적 판단이란 점에서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철안이나 버스안에서 젊고 예쁜 아가씨들을 자주 마주 치곤 하는데 그들이 풍기는 외적 이미지는 아름답다고 느껴지지만 뭔가 2% 빠진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들의 젊고 싱그러움에 폄하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갖춰져야 할 본질적인 것이 빠져 있다는 생각이었다.

우리는 흔히 얼굴은 마음의 창이란 말을 들으면서 자라났고 아브라함 링컨의 ‘40대 이후의 얼굴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말도 학창시절에 배웠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전철안에 얼굴 성형광고가 도배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우리의 젊은 여성들에게 얼굴성형은 대중화되어 있다. 우리의 성형술이 외국에도 소문나 가깝게는 중국, 일본 여성들이 많이 우리의 성형외과를 찾는다고 한다.

얼마 전 대학중용연습 수업시간에 誠於中 形於外라는 구절을 배웠는데 지금 세태에 경종을 울리는 내용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구절은 내면의 충실함을 쌓으면 그것이 밖으로 드러난다고 해석할 수 있다. , 이 말은 겉을 아무리 예쁘게 꾸민다하더라도 속에 든 것이 없으면 외양 및 외모는 한갓 종이장미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거리에 젊은이들이 많이 입고 다니는 힙합청바지도 이런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을 듯한데 힙합청바지의 원조가 미국 슬램가 흑인가족의 청소년들이 아버지,엄마,,누나 등 대를 이어 입다 보니까 무릎이 터진 바지를 입게 되었던 것인데 우리 사회는 이 청바지 문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입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없이 숭어도 뛰니까 망둥이도 뛴다는 속담처럼 줏대없이 단지 겉으로 드러난 외양만을 모방하여 유행이고 트랜드라고 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할 듯.

사람을 판단할 때는 우리는 얼굴을 보고 첫인상을 결정한다. 그러나 종종 외양이나 외모만을 보고 판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자의적이고 때로는 폭력적일 수 있는지 우리는 너무 무관심할 때가 있다. 우리나라 경산지방에 구전되어 오는 시집살이라는 민요가 있는데 배꽃같은 요내 얼굴 호박꽃이 다 되었네라는 구절이 있다. 아마도 못 생긴 여성의 얼굴을 호박꽃에 비유한 시초가 아닐까 한다. 또한 허난설헌이 쓴 규원가雪鬢花顔 어디 두고 面目可憎 되었는가라는 구절도 있다. 불과 이십대 중반의 여성이 쓴 시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는 것이 정말로 안타까운데 실상 허난설헌은 상당한 수준의 문장력과 그림솜씨와 미모를 갖췄다고 전해진다. 그런데도 자신을 폄훼하고 있는 것은 본인 자신의 불우한 시집살이와 남편의 홀대로 인한 것이란 필연적인 계기가 있는 것인데 아쉬운 것은 자신의 내면적 충실함을 갖추어 바깥으로 드러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대중가수 중에 원로급에 속하는 남진의 노래 가운데 새까만 눈동자의 아가씨 겉으로 거만한 것 같아도, 마음이 비단같이 고와서 정말로 나는 반했네,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마음 고와야 여자지내용이 요즘 거리나 전철안이나 버스에 마주 치는 젊은 남녀들을 보면서 자주 떠올리게 되고 또한 불교에서 쓰이는 一切唯心造卽心佛이란 구절을 떠올리면서 대학의 正心誠意가 하나의 궤로 엮을 수 있다고 단견일 듯 하나 생각되고 誠於中 形於外구절의 참뜻을 남녀노소 없이 가슴속에 새겼으면 바람이 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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